위기의 시대, 흙에서 길을 찾는 도시농부들
안녕하세요, 전국의 도시농부와 활동가 여러분.
결실과 나눔의 계절 한가위를 맞아 전국도시농업시민협의회 회원 단체와 활동가, 그리고 흙을 가꾸며 생명의 가치를 실천하시는 모든 분께 따뜻한 안부 인사를 전합니다.
절기는 거짓이 없어 서늘한 가을바람이 차오르고 있지만,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시대적 현실은 결코 평온하지만은 않습니다.
우리가 직면한 문명적 위기와 불확실성
지금 인류는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복합적 위기를 관통하고 있습니다. 기후위기는 매년 기록적인 폭염과 극단적인 폭우로 일상을 위협하고 있으며, AI 특이점 진입 등 기술 문명의 눈부신 가속은 도리어 미래에 대한 불안과 사회적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지구촌 곳곳에서 끊이지 않는 전쟁과 분쟁, 그리고 자원 독점과 불평등의 고착화는 일상의 평화를 뿌리째 흔들고 있습니다.
이러한 위기는 객관적인 지표로도 명확히 드러납니다.
최근 백 년간 전 세계 재배 식물 품종의 75% 이상이 소실되는 등 농업 유전자원 위기가 심화되고 있습니다. 국내 역시 도시농업 국비 예산이 2021년 25억 원에서 2026년 9.19억 원으로 63% 감소하고 공공 지원 사업이 전액 삭감되거나 축소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전국 도시텃밭 면적도 2,418ha에서 952ha로 3년 연속 감소하며 도심 내 경작지와 공공 지원 제도의 공백이 커지고 있습니다.
지구적 차원의 생태계 수용력 한계와 함께, 국내 도시농업을 둘러싼 행정·재정적 여건 역시 매우 힘겨운 조건에 놓여 있습니다. 이런 객관적인 상황속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길을 찾아야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먹거리와 공간의 공유지화
최근 베를린과 오슬로를 방문하며 사회문화적 저변에 깊이 뿌리내린 도시농업의 현장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목격한 것은 단순한 '소일거리로서의 농사'가 아니었습니다. 단순한 텃밭분양을 넘어 시민들이 함께 먹거리를 재배하고(Collective Garden), 수확한 음식을 함께 나누는 행위가 삶의 일상적인 문화이자 강력한 생태적 연대활동으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사유화되고 상업화된 도시 공간을 시민 모두의 '공유지(Commons)'로 전환해 나가는 모습은 위기에 처한 도시텃밭이 그 사회에 어떤 메세지를 던져주는지 선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도시텃밭은 유기농법으로 도시의 흙에 탄소를 저장하고, 열섬현상을 완화하며, 미래세대가 몸으로 생태적 감수성을 배우는 교육의 장이자, 이웃과 함께 규칙을 만들고 가꾸는 '도시 공유지 운동'입니다.
우리 문화 안에서 찾는 대안과 연대의 실천
유럽 현장에서 확인한 먹거리 재배와 공간 공유의 문화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우리 문화 안에는 두레와 품앗이, 마을 공동체의 개구리논과 공유지 텃밭처럼 생명을 함께 가꾸고 나누던 두터운 전통과 역사가 존재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러한 가치를 현대 도시의 맥락에서 재발견하고, 사회적 저변으로 텃밭과 도시농업의 역할을 넓혀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우선적이고 강력한 무기는 바로 '연대'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연대의 현장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하지대회에서는 빗속에서도 전국의 활동가들이 모여 도시텃밭이 생물다양성의 거점이자 생태 포럼의 장임을 확인했습니다. 또한 학교텃밭 활동가대회에서는 온라인으로 모인 90여 명의 활동가가 토종씨앗을 단순한 유산이 아닌 생태전환 교육의 생생한 재료로 풀어냈습니다.
나아가 가을과 겨울로 이어지는 하반기 동지대회 및 활동가 네트워크를 통해 현장의 경험과 고민을 나누는 공론장을 지속적으로 넓혀갈 것입니다.
풍성한 한가위를 기원합니다.
도시농업은 예산이나 행정의 지원으로만 유지되어 온 것이 아닙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손에서 흙을 놓지 않고 생명의 길을 이어온 전국 도시농부 여러분의 발걸음이 도시농업을 지탱해 온 진짜 힘입니다.
비록 인류와 사회가 마주한 과제가 무겁고 엄혹할지라도, 우리가 텃밭에서 씨앗을 심고 흙을 다지는 한 생명의 순환과 희망은 멈추지 않습니다.
이번 추석 한가위, 차오르는 보름달처럼 여러분의 삶과 가정마다 마음의 풍요로움과 평화가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 이웃, 그리고 함께 길을 걷는 동지들과 온기를 나누며 따뜻하고 넉넉한 명절 보내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사단법인 전국도시농업시민협의회 공동대표단 김충기, 조은하, 권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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